그저 그런 썰

길에서 100원짜리 동전이 점점 안 보이는 까닭

수상한작가 2026. 6. 12. 07:00

 

100원짜리 동전 하나 만드는 데 드는 원자재값이 약 110원이라고 합니다. 액면가보다 원가가 더 비싸진 셈이에요.

 

자료 정리하다가 이 한 줄을 보고 잠깐 멈췄어요. 동전이 길에서 잘 안 보이는 게 단순히 카드 결제가 늘어서만은 아니었더라고요. 오늘은 이 짧은 썰 하나 풀어드릴게요.

 

한국은행으로 돌아오는 동전이 새로 풀리는 양을 웃돈다

요즘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묘한 현상이 잡힙니다. 시중에서 한국은행으로 회수되는 동전, 그러니까 환수되는 양이 새로 발행되는 양을 웃도는 흐름이 2020년부터 6년째 줄곧 이어지고 있다고 해요.

 

쉽게 그려보면 이래요. 한국은행이 새 100원짜리 한 자루를 시중에 풀면, 거의 같은 시기에 그보다 많은 양이 도로 들어옵니다. 들어오는 통로는 주로 은행이고, 다시 풀려나가는 양은 점점 줄어들고요.

 

 

머릿속에 떠올려 보세요. 조폐창에서 갓 찍혀 나온 반짝거리는 100원짜리들이 자루에 담겨 트럭에 실려요. 그런데 그 트럭이 막 시중으로 떠나려는 순간, 옆 차선에서는 더 큰 트럭이 헌 동전을 잔뜩 싣고 한국은행 마당으로 들어오는 장면이지요. 양쪽이 마주치는 그림이 지금 한국은행 앞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풍경입니다.

 

가설 1 — 찍을수록 손해니까 안 찍는다

가장 먼저 짚어볼 이유는 제조원가입니다. 100원짜리는 구리와 니켈로 만드는데, 이 두 금속 가격이 2020년대 들어 많이 올랐다고 해요.

 

원자재값만 약 110원으로, 운반비·인건비·유통비까지 얹으면 액면가 100원을 넘어서는 구조입니다. 액면가가 100원인데 원가가 110원이라니, 자판기에 100원 넣으면 110원짜리 캔이 떨어지는 셈이지요. (다만 한국은행은 새로 찍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환수한 동전을 다시 골라 쓰기 때문에, 발행할 때마다 곧장 적자가 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얹어볼 이야기가 있어요. 2017년부터 한국은행이 '동전 없는 사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편의점에서 거스름돈을 동전으로 받지 않고 교통카드나 계좌에 적립해 주는 방식이에요. 새로 동전을 찍어 풀어야 할 이유가 정책적으로도 줄어들고 있는 흐름입니다.

 

가설 2 — 카드와 페이가 거스름돈을 지워버렸다

두 번째 이유는 굳이 길게 풀지 않아도 다들 체감하실 거예요. 한국은행 지급수단 조사 기준으로, 현금 결제 비중이 10%대로 내려앉았다는 통계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분식집에서 떡볶이 3,500원을 내면 500원이 돌아왔어요. 자판기에 100원을 두세 개 넣고 캔커피 한 잔 뽑는 풍경도 사무실마다 있었고요. 지금은 그 자리를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신용카드가 차지했지요. QR 코드 한 번 찍으면 100원 단위 거스름돈이 발생할 일 자체가 없어요.

 

 

가게 주인 입장에서도 동전 보관이 골치였다고 합니다. 무거운 데다가 부피도 크고, 은행에 가져가도 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카드 단말기와 QR 결제로 옮겨가니 동전 거래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라졌습니다.

 

가설 3 — 사실 동전은 사라진 게 아니라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

여기서부터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길에서 100원짜리가 안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동전들이 분실됐기 때문이 아니라 집집마다 서랍과 저금통 안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한국은행 추산으로는 1인당 평균 360개 정도의 동전이 가정에 묶여 있다고 합니다. 산술적으로 4인 가족이면 약 1,440개의 동전이 서랍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는 얘기예요. 책상 두 번째 칸을 열어보면 영수증과 머리끈 사이에 100원짜리 몇 개가 굴러다니는 풍경, 누구나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여기에 100원의 구매력 자체가 옛날 같지 않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1990년대 100원이면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었지만, 지금은 100원짜리 하나로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길에 떨어진 100원을 봐도 허리를 굽혀 줍지 않는 경향이 점점 강해진 계산이지요.

 

그래서 매년 5월이 되면 금융권에서 '범국민 동전 교환 운동'을 펼칩니다. 은행 창구마다 동전 자루를 들고 줄 선 사람들이 보이는 그 시기예요. 잠자는 동전을 다시 깨워서 시중에 돌리려는 시도인데, 한국은행이 새로 찍는 비용보다 이쪽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캐나다는 2013년에 1센트 동전을, 호주는 1992년에 1·2센트 동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했어요. 우리도 비슷한 길을 따라갈지, 아니면 전통시장이나 고령층 결제 환경 때문에 한동안 100원짜리는 계속 찍어내야 할지, 그 갈림길 위에 서 있는 거지요. 오늘 밤 책상 서랍 두 번째 칸을 열어보면, 영수증 사이에 끼어 잠자고 있는 100원짜리 몇 개가 이 이야기의 작은 증거로 굴러 나올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