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 23

산시성 푸핑 창춘 유적 — 서주 왕기의 사라진 퍼즐 조각

2022년 여름, 산시성 푸핑현 창춘촌의 밭 아래로 삽이 들어갔습니다. 12미터를 파 내려간 끝에 드러난 건 옥과 청동기로 가득한, 한 부부의 무덤이었어요. 2026년 4월 말, 중국 10대 신발견에 오른 한 줄자료를 정리하다가 한 줄에서 손이 멈췄어요. 2026년 4월 29일, 국가문물국이 발표한 '2025년도 전국 10대 고고학 신발견' 명단에 서주 시대 유적이 한 곳 끼어 있더라고요. 푸핑 창춘 유적. 최근 5년간 서주에서 춘추로 이어지는 시기 중 단독으로 이름을 올린 첫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도 220만 제곱미터, FIFA 국제축구장 표준 기준으로 축구장 300개를 합친 면적으로요. 신화통신과 CCTV가 비중 있게 다룰 만큼 학계에선 큰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일반 독자들에겐 이름조차..

채널5 다큐가 던진 '괴파 30m' 한 줄, 버뮤다 삼각지대 500년 미스터리

아파트 10층 높이, 30미터. 채널5 다큐의 수조 안에서 약 165미터 미 해군함 모형이 단 2분 만에 두 동강 났습니다. 지난주에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장면을 한참 다시 돌려봤어요.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교의 한 해양학자가 수조 옆에 서서, 세 방향에서 밀려온 인공 파도가 모형 한가운데를 들어 올렸다가 꺾어 버리는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더라고요. 500년 가까이 이어진 바다 괴담에, 과학자가 처음으로 한 줄짜리 답안을 던진 셈입니다. 1918년 사이클롭스 침몰과 30m 괴파 가설이야기는 1918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 해군 보급함 USS 사이클롭스, 542피트(약 165미터). 짐을 가득 싣고 브라질 바이아(살바도르)에서 볼티모어로 향하던 중, SOS 한 통 없이 사라졌어요. 승조원 3..

캘리포니아의 한 화가가 목성의 고리를 먼저 그렸다는 이야기

1973년 4월 27일, 한 화가가 종이에 목성의 고리를 그렸습니다. NASA 파이어니어 10호가 목성에 도착해 그 고리의 존재를 뒷받침하기 직전의 일이었어요. 그가 앉아 있던 곳은 캘리포니아의 한 연구실이었습니다. 그 연구실의 정식 이름은 스탠퍼드 연구소(SRI). 화가의 이름은 잉고 스완이었고, 그 방에 그를 앉혀 둔 건 다름 아닌 미국 CIA였습니다. 오늘 풀어드릴 이야기는 미국 정부가 1972년부터 1995년까지 23년 동안 '진짜로' 굴렸다고 인정한 초능력 연구,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입니다. 소련 첩보가 끌어낸 CIA의 23년짜리 초능력 비밀 연구실이야기의 시작은 1970년대 초 미 국방정보국(DIA)의 한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CIA 분석관들이 책상에 펼쳐 놓은 종이엔, 소련이 키예프와 ..

닌티의 갈비뼈 — 4,500년 전 점토판이 먼저 적어둔 '생명의 여인'

지난주에 자료를 정리하다가 '닌티(Nin-ti)'라는 이름 앞에서 한참 손이 멈췄어요. 4,500년 전 수메르어로 '갈비뼈의 여인'이자 '생명을 주는 여인'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나 '생명을 주는 자'로 불리는 그 장면을, 어딘가 먼 옛날 진흙 판 위에 누군가 먼저 적어두었다는 얘기예요. 그것도 무려 1,000년 이상 앞서서요. 오늘 풀어드릴 이야기는 이 묘한 평행선의 출발점, 「엔키와 닌후르사그」 신화입니다. 1945년, 한 점토판이 풀어낸 '낙원' 이야기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발굴팀이 이라크 남부의 옛 도시 니푸르(Nippur, 수메르의 종교 중심지)를 파내려갔어요. 그 모래밭에서 손바닥만 한 점토판 수천 점이 쏟아져 나왔지요. 갈..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뒤, 결말은 네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잔치 마당의 모든 맹인이 함께 눈을 뜨는 그 유명한 만인개안 장면, 사실 가장 오래된 심청전엔 없었어요. 우리가 아는 그 결말은 판소리 흥행을 위해 후대에 덧붙인 각색이었습니다. 심청전은 한 권이 아니라 80여 종 이본의 군집이에요자료실에 심청전 이본들을 쌓아 놓고 보면, 같은 제목의 책인데 안쪽 페이지가 다 달라요. 한지에 또박또박 적힌 경판본부터 거친 종이의 1920년대 딱지본까지, 표지 색깔이 제각각이에요. 심청전은 한 작가가 한 번에 쓴 작품이 아니에요. 18세기 후반 판소리 사설에서 출발해 시간이 흐르면서 약 80여 종의 이본(異本, 같은 이야기인데 내용이 조금씩 다른 판본)이 갈라져 나온 텍스트 군집입니다. 큰 줄기를 단순화하면 한남본 → 송동본 → 완판본 순으로 가지가 자랐다고 봅니다. 근..

카테고리 없음 2026.06.19

메리 킹스 클로즈, 흑사병으로 봉인됐다는 그 골목의 진짜 이야기

'산 채로 봉인된 흑사병의 거리'라고 알려진 메리 킹스 클로즈. 그런데 자료를 들춰보면, 그 골목은 흑사병 이후에도 100년 넘게 멀쩡히 사람이 살던 동네였어요. 에든버러 시청사(City Chambers) 아래, 17세기 골목 한 줄이 그대로 묻혀 있는 곳. 가이드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만 드러나는 그 돌벽에는, 사실 전설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붙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골목 이름의 주인부터, 뒤늦게 만들어진 유령까지 한 번 풀어드릴게요. 1635년 이전, 활기찬 상업 골목이었던 시절지금은 지하 통로처럼 보이는 메리 킹스 클로즈, 17세기에는 에든버러 구시가의 평범한 한 골목이었습니다. 변호사, 상인, 재단사, 톱장이가 한 건물 위아래에 빽빽이 살던 7층짜리 석조 건물들이 양쪽으로 솟아 있었다고 ..

엔필드 폴터가이스트, 런던 한 집을 흔든 18개월의 기록

1977년 8월 어느 밤, 런던 북쪽 엔필드의 공공 임대 주택 2층 침실에서 11살 소녀가 엄마를 부릅니다. 침대가 흔들리고, 옷장 서랍이 혼자 빠져나와 방 한가운데 멈춰 있었다고 해요. 어머니 페기 호지슨이 달려가 그 서랍을 제자리로 밀어 넣는 순간, 같은 서랍이 다시 슬며시 밀려 나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날 이후 18개월 동안, 그 집에서 1,500건이 넘는 현상이 보고됐어요. 자료를 정리하다 손이 멈췄던 이 사건, 영화 '컨저링 2' 의 원안이 된 엔필드 폴터가이스트 이야기를 풀어드릴게요. 1977년 8월, 호지슨가의 첫 밤엔필드 그린 스트리트 284번지. 싱글맘 페기와 네 자녀가 살던 평범한 2층 임대 주택이었습니다. 첫 신고가 들어간 날, 출동한 인물은 엔필드 경찰서의 여경 캐럴린 힙스..

어느 날 아이가 "루루랑 놀았어"라고 말한다면, 발달심리와 민간 사이 어딘가

저녁 식탁에 숟가락이 하나 더 놓여 있어요. 다섯 살 아이가 "루루도 밥 먹어야 해"라고 말하는 그 순간, 부모의 손이 잠깐 멈추죠. 오늘 풀어드릴 이야기는 바로 이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주제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어요. 발달심리학 논문 한 묶음과 옛 어른들의 풍습 메모가 비슷한 결론으로 모이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짧게 풀어드릴게요. 1934년 학자의 노트에서 시작된 상상 친구라는 이름'보이지 않는 친구'에 대한 학술적 정의를 처음 정리한 건 1934년 스벤슨(Svendsen)이라는 학자였다고 합니다. 그가 붙인 이름이 'imaginary companion(상상의 동반자)'이었어요. 핵심은 이게 환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는 친구가 진짜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알면서 일부러 ..

그저 그런 썰 2026.06.16

옥수수에서 빚어진 사람들, 키체 마야 『포폴 부』 천지창조 따라 읽기

사람을 빚는 데 신들이 세 번이나 실패했다고 합니다. 진흙은 녹았고, 나무는 영혼이 없어 대홍수에 휩쓸렸고, 살아남은 나무 인간은 오늘날의 원숭이가 되었다는 이야기예요.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한 줄에서 손이 멈췄어요. 우리가 아는 창조 신화들은 대개 신이 한 번에 인간을 빚어내는데, 이 책은 신들이 머리를 싸매고 시행착오를 거듭합니다. 그 책의 이름이 바로 『포폴 부(Popol Vuh)』, 과테말라 고원에 살던 키체(K'iche') 마야의 천지창조 이야기입니다. 정복자의 알파벳으로 몰래 옮겨진 책이야기는 16세기 중반 과테말라 고원에서 시작됩니다. 스페인 정복(1524년)이 끝난 지 30년쯤 흘렀을 무렵, 키체 마야 귀족 몇 사람이 한 가지 결심을 했다고 해요. 사라져가는 자기 부족의 창조 이야기를, 정..

콩쥐와 팥쥐, 한국판 신데렐라라 부르기엔 그늘이 너무 짙은 이야기

지난주 자료를 정리하다 1919년 대창서원본 콩쥐팥쥐 이야기를 들여다보는데, 한 대목에서 손이 멈췄어요. 팥쥐의 시신을 젓갈로 담가 그 어미에게 보냈다는 결말이었습니다. 제가 알던 그 동화가 맞나 싶더라고요. 어렸을 때 그림책에서 본 콩쥐는 꽃신 한 짝을 잃어버리고 원님과 혼인하는 데서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건 1990년대 이후 아동용으로 손본 판본이고, 활자본 원전은 그 다음 페이지부터가 진짜 시작이었어요. 깨진 독에 몸을 끼운 두꺼비, 19세기 말 구전의 풍경활자로 굳어지기 전, 콩쥐팥쥐는 마을마다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이야기였습니다. 결말이 유배에서 그치는 온건한 변형도 있었고, 지역에 따라 조력자가 바뀌기도 했어요. "원작이 뭐였냐"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이지요. 그래도 공통으로 살아남은 장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