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썰

어느 날 아이가 "루루랑 놀았어"라고 말한다면, 발달심리와 민간 사이 어딘가

수상한작가 2026. 6. 16. 07:00

 

저녁 식탁에 숟가락이 하나 더 놓여 있어요. 다섯 살 아이가 "루루도 밥 먹어야 해"라고 말하는 그 순간, 부모의 손이 잠깐 멈추죠. 오늘 풀어드릴 이야기는 바로 이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주제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어요. 발달심리학 논문 한 묶음과 옛 어른들의 풍습 메모가 비슷한 결론으로 모이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짧게 풀어드릴게요.

 

1934년 학자의 노트에서 시작된 상상 친구라는 이름

'보이지 않는 친구'에 대한 학술적 정의를 처음 정리한 건 1934년 스벤슨(Svendsen)이라는 학자였다고 합니다. 그가 붙인 이름이 'imaginary companion(상상의 동반자)'이었어요.

 

핵심은 이게 환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이는 친구가 진짜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알면서 일부러 그 친구와 놀아준다는 거예요. 여러 연구에서 상상 친구를 가진 아이 대다수는 "이건 진짜가 아니에요"라고 또렷이 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서재 한쪽에 앉아 인형과 대화하는 아이를 본 적이 있으실 거예요. 인형 자리에 아무것도 없을 뿐, 머릿속에선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지요. 다섯 살 아이의 방바닥에 작은 컵 두 개가 마주 놓여 있고, 그중 하나에서만 김이 오르는 그 장면을 떠올려 보면 그림이 그려져요.

 

외동이라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65% 통계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자료는 미국 오리건대 마조리 테일러(Marjorie Taylor) 교수가 워싱턴대 스테파니 칼슨(Stephanie Carlson)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입니다. 만 7세 아동의 약 65%가 어느 시기에든 상상 친구를 거쳐 갔다는 결과가 거기서 나왔다고 해요.

 

 

이 숫자가 흥미로운 이유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믿어온 통념을 깼기 때문이에요. "외동이라서", "내성적이라서" 상상 친구가 생긴다고들 했죠. 그런데 사회성 좋은 아이, 형제 많은 아이에게도 똑같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상상 친구는 외로움의 지표가 아니라 언어와 상상력이 만나는 다리 쪽에 가깝다고 해석됩니다. 아이의 머릿속 친구는 사실 한참 전부터 있었는데, 이제 그걸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언어가 자란 거예요. 그래서 부모 입장에선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거지요.

 

떡 한 접시를 떠놓던 옛 어른들의 손님맞이

자료를 뒤지다가 한국 민간 풍습 쪽에서 재미있는 대목을 만났어요. 옛 어른들은 아이가 허공에 대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면, 그 존재를 무리해서 부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오히려 부엌에서 떡 한 접시를 떠다가 아이 옆에 슬쩍 놓아두기도 했다고 해요. "집을 살피러 잠시 들른 손님"이라고 여겼다는 거예요. 며칠 머물다 떠나는 길손에게 차 한 잔 내는 마음과 비슷합니다. 부엌 문턱 너머,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흰 접시가 작은 발치에 놓여 있는 풍경. 묘하게 다정한 장면이에요.

 

 

다만 모든 경우가 환대받은 건 아니었다고 해요. 아이가 "그 친구가 무서운 말을 한다", "어디로 따라오라고 한다"고 말하면, 옛 어른들은 그건 좋지 않은 손님이라고 봤다는 거예요. 흥미롭게도 이 부분은 현대 임상에서도 거의 같은 지점을 짚습니다. 상상 친구가 위협적인 명령을 한다면 그건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신호로 본다고 해요.

 

학계와 민간이 만나는 자리

학계의 결론과 민간의 결론이 묘하게 같은 곳에 도착해요. 어른은 가볍게 인정만 하고, 놀이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두라는 것. 부정하지도, 너무 캐묻지도 않는 자리에서 아이는 자기 안의 친구를 충분히 데리고 놀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작별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시기를 거친 아이가 어휘력, 타인의 관점을 추론하는 능력, 감정 조절력에서 더 풍부한 성장을 보였다고 보고합니다. 상상 친구가 아이를 귀찮게 굴거나 말을 안 듣는 경우조차, 아이가 다룰 수 있는 크기의 갈등을 스스로 연습하는 자리로 해석된다고 해요.

 

옛 어른들이 떡 한 접시로 표현했던 그 거리감이, 어쩌면 가장 정확한 답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가까이 가지도, 너무 멀리 밀어내지도 않는 그 자리 말이에요.

 

상상 친구를 대하는 부모의 짧은 메모

자료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하나 있어요. 상상 친구를 훈육 도구로 쓰지 말라는 거예요. "루루가 화내잖아", "루루가 너 미워한대" 같은 말은 아이에게 책임을 미루는 법을 가르치는 셈이 된다고 합니다.

 

대신 아이가 새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 친구의 이름과 성격을 한 번 물어봐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요. 어느 침대 머리맡에서, 베개 옆 빈자리에 대고 아이가 작게 인사하고 잠드는 그 짧은 장면이 1934년의 학자와 옛 어른들이 똑같이 지켜보았던 풍경입니다.

 

 

일반적인 임상 가이드에 따르면, 만 8세가 지나도 친구가 떠나지 않거나, 아이가 현실과 상상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거나, 친구가 위협적인 말을 전한다면 그땐 전문가의 자리로 봅니다. 그 외엔, 손님 한 분 다녀가는 시기로 두어도 괜찮다는 게 두 갈래 이야기가 모이는 결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