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8월 어느 밤, 런던 북쪽 엔필드의 공공 임대 주택 2층 침실에서 11살 소녀가 엄마를 부릅니다. 침대가 흔들리고, 옷장 서랍이 혼자 빠져나와 방 한가운데 멈춰 있었다고 해요. 어머니 페기 호지슨이 달려가 그 서랍을 제자리로 밀어 넣는 순간, 같은 서랍이 다시 슬며시 밀려 나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날 이후 18개월 동안, 그 집에서 1,500건이 넘는 현상이 보고됐어요. 자료를 정리하다 손이 멈췄던 이 사건, 영화 '컨저링 2' 의 원안이 된 엔필드 폴터가이스트 이야기를 풀어드릴게요.
1977년 8월, 호지슨가의 첫 밤
엔필드 그린 스트리트 284번지. 싱글맘 페기와 네 자녀가 살던 평범한 2층 임대 주택이었습니다. 첫 신고가 들어간 날, 출동한 인물은 엔필드 경찰서의 여경 캐럴린 힙스(Carolyn Heeps)였어요.
힙스가 거실에 들어선 순간, 안락의자 하나가 카펫 위를 1미터 가까이 미끄러져 갔다고 진술합니다. 끈도, 자석도, 누군가의 손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힙스는 이 장면을 정식 진술서로 남깁니다. 영국 경찰이 '의자가 스스로 움직였고,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고 공식 문서에 적은 드문 사례입니다.

이 진술서가 곧 데일리 미러 같은 영국 타블로이드를 타고 흘러나갔고, 다음 날부터 그 집 앞에 기자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국 심령연구학회, 줄여서 SPR(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1882년에 설립된 영국의 초자연 현상 연구 단체)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SPR이 채워간 1,500건의 기록
SPR이 보낸 조사관은 모리스 그로스(Maurice Grosse). 본업은 발명가였고, 직접 딸을 사고로 잃은 뒤 초자연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는 호지슨가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머무릅니다.
그로스와 동료 작가 가이 라이언 플레이페어(Guy Lyon Playfair)가 여러 달에 걸쳐 모은 자료가 어마어마합니다. 음성 녹음만 200시간이 넘는 분량에, 가족 진술서, 이웃 증언, 사진까지. 이 자료가 훗날 BBC 다큐멘터리와 책 '이 집은 시끄럽다(This House is Haunted)' 의 1차 사료가 됩니다.

그동안 두 사람이 기록한 장면 몇 개. 한밤중 거실에서 레고 블록이 천천히 솟아올라 누군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는 메모. 부엌 의자가 식탁을 돌아 반대편 벽에 닿았다는 메모. 둘째 딸 재닛이 잠든 사이 침대에서 50센티미터쯤 떠 있는 모습을 봤다는 메모. 그로스는 이 1,500건의 사건 중 상당수를 단순한 장난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립니다.
빌 윌킨스라는 이름의 목소리
엔필드 사건에서 가장 기이한 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은 따로 있어요. 어느 시점부터 재닛이 거칠고 굵은 노인의 남성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 겁니다.
녹음테이프 속 그 목소리는 자신을 빌 윌킨스(Bill Wilkins)라 칭하면서, "나는 이 집 1층 의자에 앉아 있다가 뇌출혈로 죽었다" 고 말합니다. 11살 소녀의 성대에서 나오는 소리치고는 너무 낯선 음역이라, 영국 라디오 방송국 LBC가 이 녹음을 그대로 송출했어요.

그런데 방송이 나간 뒤 한 남자가 LBC로 전화를 겁니다. "그 목소리, 제 아버지 목소리가 맞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빌 윌킨스가 실제로 그 집에 살았고, 거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증언합니다. 재닛이 알 길이 없던 그 집의 옛 사망 정황이 녹음 속 목소리와 맞아떨어졌다는 점이, 지금도 이 사건이 깔끔하게 닫히지 않는 이유로 남아 있습니다.
회의론자가 본 같은 장면
물론 반대편 시선도 거셌습니다. 같은 SPR 소속이었던 심리학자 아니타 그레고리(Anita Gregory)는 호지슨 자매가 카메라 앞에서 일부러 숟가락을 구부리거나, 베개를 던지고 시치미를 떼는 장면을 직접 잡아냈다고 보고합니다.
엔필드 사건의 상징처럼 알려진 '재닛의 공중부양' 사진도 회의론 쪽에서는 다르게 봅니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점프하는 순간을 옆에서 셔터로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지요. 사진 속 재닛의 머리카락이 위에서 아래로 흩어져 있는 게 점프 직후의 공기 흐름과 일치한다는 분석도 있었어요.

흥미로운 건 그레고리조차 모든 현상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일부 사건은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고 본인 보고서에 적어두었습니다. 같은 집을 같은 시기에 본 두 조사관이, 한쪽은 '진짜가 섞여 있다', 다른 한쪽은 '대부분 연출이지만 일부는 모르겠다' 로 갈라졌습니다.
30년 뒤, 재닛이 남긴 '2%' 라는 문장
2007년, 성인이 된 재닛 호지슨이 한 영국 일간지 인터뷰에 나섭니다. 회색이 섞인 머리를 한 채 카메라 앞에 앉은 그녀는 한 문장으로 사건을 요약했어요. "사건의 약 2% 정도는 우리가 꾸민 장난이었습니다."
이 '2% 자백' 을 두고 양쪽이 정반대로 인용합니다. 회의론자에게는 '2% 라도 인정한 이상 전체가 신뢰 불가' 라는 근거. 지지자에게는 '나머지 98% 는 진짜였다는 본인 증언' 이라는 근거. 같은 문장이 30년 사이 두 갈래로 갈라져 다른 결론에 가서 꽂힌 셈입니다.
재닛은 인터뷰에서 그 이후의 삶도 담담히 풀어냅니다. 어린 시절 너무 일찍 카메라 앞에 선 대가로 가족 모두가 평생 그 집을 떠나지 못했다는 회고. 어머니 페기는 그 집에서 2003년에 세상을 떠났고, 재닛의 형제 한 명도 일찍 잃었다고 합니다.
영화 '컨저링 2' 의 핵심 인물인 워렌 부부는 실제 사건에서 단 하루 방문한 손님에 가까웠다고 전해집니다. 영화 속 수녀 악마 발락(Valak)은 엔필드 사건과는 아무 관련 없는 영화적 창작물이지요. 진짜 18개월을 지킨 사람은 그로스와 플레이페어, 그리고 호지슨 가족이었습니다.

엔필드 폴터가이스트는 풀린 사건이 아닙니다. 풀리지 않은 채로 자료가 가장 많이 남은 사건, 그래서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사랑방 한구석에서 다시 꺼내지는 사건. 그 집의 안락의자가 카펫을 미끄러져 간 그 1미터를 어떻게 해석하실지는, 여러분 판단에 맡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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