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4월 27일, 한 화가가 종이에 목성의 고리를 그렸습니다. NASA 파이어니어 10호가 목성에 도착해 그 고리의 존재를 뒷받침하기 직전의 일이었어요. 그가 앉아 있던 곳은 캘리포니아의 한 연구실이었습니다.
그 연구실의 정식 이름은 스탠퍼드 연구소(SRI). 화가의 이름은 잉고 스완이었고, 그 방에 그를 앉혀 둔 건 다름 아닌 미국 CIA였습니다. 오늘 풀어드릴 이야기는 미국 정부가 1972년부터 1995년까지 23년 동안 '진짜로' 굴렸다고 인정한 초능력 연구,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입니다.
소련 첩보가 끌어낸 CIA의 23년짜리 초능력 비밀 연구실
이야기의 시작은 1970년대 초 미 국방정보국(DIA)의 한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CIA 분석관들이 책상에 펼쳐 놓은 종이엔, 소련이 키예프와 모스크바의 연구소에서 '염력·투시' 같은 실험에 막대한 예산을 쏟고 있다는 첩보가 적혀 있었어요.

미국 입장에선 무시하기 어려운 카드였습니다. 적이 진지하게 연구한다면, 효과가 0%여도 그 시도 자체를 따라가 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1972년, SCANATE(스카네이트)라는 암호명으로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의 SRI에 자금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어요. GRILL FLAME, SUN STREAK 같은 코드명을 거쳐 1991년 마침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로 통합됐고, 23년간 약 2천만 달러(누적 추정치)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요즘 같은 이름으로 뉴스에 나오는 OpenAI의 AI 인프라 프로젝트와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예요. 우연히 이름만 겹쳤습니다.
위도·경도 숫자 한 줄만으로 대상을 묘사한다는 CRV
이 프로젝트의 핵심 도구는 CRV(Coordinate Remote Viewing, 좌표 원격 투시) 라는 프로토콜이었습니다. 방식은 묘하게 단순해요. 피험자에게 위도·경도 좌표 한 줄만 건네고, 그 자리에서 본 풍경·건물·인물을 그림과 글로 묘사하라고 시키는 겁니다.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형광등이 환한 SRI 사무실, 책상 위엔 종이 한 장과 연필. 좌표 "북위 OO, 동경 OO"가 적혀 있을 뿐이지요. 피험자는 눈을 감고, 한참 뒤 종이에 둥근 돔과 굴뚝을 그려 넣습니다. 그 좌표가 어디인지는 자기도 모릅니다.
이 방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앞서 말씀드린 잉고 스완의 목성 스케치예요. 또 한 명, 전직 경찰 출신인 팻 프라이스도 비슷한 일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소련의 한 연구·개발(R&D) 시설 좌표를 건네받고, 우랄산맥 자락 비밀 시설의 건물 배치와 큰 크레인까지 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몇몇 디테일은 훗날 위성 사진과 맞아떨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타이푼급 잠수함을 그렸다는 '001번 요원'의 공로훈장
장면을 군부대로 옮겨 볼게요. 버지니아주 포트미드의 한 막사, 'SUN STREAK' 시절의 원격 투시 부대가 자리 잡고 있던 곳입니다. 그 안에 조셉 맥모니글이라는 육군 준위가 있었어요. 별명이 '001번 요원'이었습니다.

그가 자주 언급되는 임무는 이런 식이에요. 1979년, 소련이 새로 건조 중이라는 거대한 잠수함의 정체를 알아내라는 요청. 맥모니글은 도크에 누워 있는 거대한 선체와 평소보다 넓은 폭, 두 개의 격납고를 묘사했다고 합니다. 몇 년 뒤 위성 사진에 등장한 게 바로 타이푼급 핵잠수함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1979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 추락한 소련 Tu-22 폭격기 위치 특정, 1981년 붉은 여단에 납치된 미 육군 제임스 도지어 준장 수사 지원 같은 사례들이 자주 인용됩니다.
맥모니글은 결국 1984년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은 것으로 전해져요. 23년간 다섯 손가락에 꼽힐 '성공 사례'인 셈입니다.
1995년, 같은 데이터를 본 두 학자의 정반대 결론
흥미로운 건 이 프로젝트의 끝입니다. 1995년 미 의회는 CIA에 "이거 정말 효과 있는 게 맞느냐"고 물었고, CIA는 AIR(American Institutes for Research) 라는 외부 기관에 평가를 맡겼어요. 평가단엔 두 명의 학자가 들어갔습니다.

한쪽은 통계학자 제시카 어츠. 그녀는 23년치 데이터를 들여다본 뒤 "성공률이 우연으로 설명되지 않을 만큼 높게(연구실 기준 약 15%가량) 나온다, 무언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현상이 있다"라고 적었어요.
반대쪽은 심리학자 레이 하이먼. 그는 같은 데이터를 보고 이렇게 결론을 냈습니다. "방법론에 큰 결함은 없지만, 작전에 실제로 쓸 수 있는 정보(actionable intelligence) 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같은 표, 같은 숫자를 두 사람이 보고 정반대의 보고서를 낸 셈입니다. CIA의 최종 판단은 후자 쪽이었어요. "작전 가치가 명백히 입증되지 않았다." 그렇게 23년 동안 굴러간 연구실은 1995년 문을 닫았고, 약 1만 2천 페이지의 관련 문서가 비밀해제됩니다. 지금도 CIA의 CREST 시스템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어요.
비밀해제된 1만 2천 페이지에 남은 회의와 신봉의 흔적
기밀이 풀린 그 문서 더미를 상상해 보세요. 빛바랜 종이 위에 좌표와 스케치, "피험자는 둥근 돔을 보았다"는 식의 무미건조한 보고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모습입니다. 사이언톨로지 활동 이력이 있는 잉고 스완 같은 핵심 연구진의 흔적, 결함이 의심되는 실험 기록, 그리고 분명 맞춘 것 같은 몇 장의 그림이 같은 상자 안에 뒤섞여 있어요.
회의론자들은 단호한 편입니다. 수천 건의 실패 중 잘 맞은 몇 건만 떼어내는 '체리피킹'이고, 팻 프라이스 같은 인물은 좌표의 의미를 미리 짐작할 만한 단서를 받았을 거라는 지적입니다. 핵심 연구진의 종교적 배경이 객관성에 흠집을 낸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신봉자들은 어츠 보고서의 그 통계적 흔적을, 그리고 잉고 스완이 그린 목성의 고리 한 장을 좀처럼 놓지 못합니다. 23년이라는 시간, 2천만 달러라는 예산, 공로훈장을 받은 군인. 행정 기록만큼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남은 건 그 1만 2천 페이지의 문서뿐입니다. 한쪽엔 우연을 넘는 통계적 흔적이, 다른 한쪽엔 단 한 번도 작전을 바꾸지 못한 보고서가 동시에 놓여 있어요. 그 사이 어딘가에 진짜 그림이 있을지, 아니면 그저 잘 정리된 우연의 더미일지.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 보고서 위에 손을 올려두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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