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10층 높이, 30미터. 채널5 다큐의 수조 안에서 약 165미터 미 해군함 모형이 단 2분 만에 두 동강 났습니다.
지난주에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장면을 한참 다시 돌려봤어요.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교의 한 해양학자가 수조 옆에 서서, 세 방향에서 밀려온 인공 파도가 모형 한가운데를 들어 올렸다가 꺾어 버리는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더라고요. 500년 가까이 이어진 바다 괴담에, 과학자가 처음으로 한 줄짜리 답안을 던진 셈입니다.
1918년 사이클롭스 침몰과 30m 괴파 가설
이야기는 1918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 해군 보급함 USS 사이클롭스, 542피트(약 165미터). 짐을 가득 싣고 브라질 바이아(살바도르)에서 볼티모어로 향하던 중, SOS 한 통 없이 사라졌어요. 승조원 306명이 통째로, 흔적도 없이 말이지요.
100년 뒤, 채널5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버뮤다 트라이앵글 에니그마〉에 사이먼 박솔 박사가 등장합니다. 그가 던진 한 줄은 이랬어요. "남쪽, 북쪽, 카리브해 쪽 세 방향에서 동시에 폭풍이 밀려들면, 그 파도들이 한 점에서 합쳐지면서 30미터짜리 '로그 웨이브(괴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수조에 띄운 사이클롭스 축소 모형은 그 인공 괴파를 정통으로 맞고 2~3분 만에 두 동강이 났습니다. 영상만 놓고 보면, 가설은 거의 정답처럼 보이는 장면이지요.
가설을 던진 본인이 그어놓은 선
흥미로운 점은 여기부터예요. 가설을 제시한 박솔 박사 본인이 한계를 분명히 짚어 두었거든요. "버뮤다에서 보고된 실종 사건 중 괴파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약 2% 정도다. 나머지는 인적 실수와 악천후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 실험은 동료 심사를 거친 학술 논문이 아니라 방송 콘텐츠라는 점도 짚고 가야 합니다. 버뮤다 해역에서 괴파가 다른 바다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는 현장 데이터도 따로 없어요. 사이클롭스 자체도 미 해군 사후 조사 기록에서 선체 구조 결함이 보고된 적이 있어, 굳이 30미터 파도까지 가지 않아도 침몰할 만한 배였다는 지적이 따라붙습니다.

이 가설로는 1945년 12월 5일에 사라진 '비행대대 19'도 설명하기 어려워요. TBM 어벤저 5기와 승조원 14명, 그리고 수색에 나섰던 마틴 마리너 1기와 13명까지 총 27명이 통째로 실종된 그 사건은 항공기 사고였습니다. 바다 위에서 솟구친 파도가 하늘을 날던 비행기를 데려갔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로이드 보험과 해안경비대의 차가운 결론
여기서 한 박자 쉬어 갑니다. 그렇게 위험한 해역이라면, 보험사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깐깐하다는 런던 로이드 보험은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나가는 선박에 별도 추가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통계적으로 다른 해역과 위험도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미국 해안경비대(USCG)와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입장도 같습니다. "사고율이 다른 번잡한 해역과 비교해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것이 공식 결론입니다.

한때 유력하게 거론되던 '해저 메탄 하이드레이트 분출' 가설도 미 지질조사국(USGS)에서 한 줄로 정리됐습니다. 블레이크 릿지에 대규모 매장층이 있긴 하지만, "최근 1만 5천 년간 이를 유발할 만한 분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지요.
1964년에 태어난 '500년 미스터리'
그럼 이 500년 미스터리는 대체 언제부터 미스터리였을까요. 이 부분을 정리하면서 저도 좀 놀랐더라고요.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이름 자체가 196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작가 빈센트 가디스가 《Argosy》 1964년 2월호 표지 기사 "The Deadly Bermuda Triangle"에서 처음 쓴 표현이에요.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에 적힌 나침반 이상 기록과 정체불명 불빛이, 가디스가 이름을 붙이는 근거가 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1974년 찰스 베리츠의 베스트셀러 《버뮤다 삼각지대》가 기름을 부었어요. 출간 직후 여러 언어로 번역됐고, 이때부터 '사라진 배와 비행기'가 한 카테고리로 묶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수백 년 묵은 바다 괴담"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사실 60여 년 된 미디어 현상에 가깝다는 얘기예요.
미해결 해양학 문제로 다시 놓이는 자리
자료를 다 덮고 나니 그림 한 장이 남았어요. 한쪽에는 수조 안에서 두 동강 난 사이클롭스 모형이 떠 있고, 다른 한쪽에는 로이드 보험사의 회계 장부가 펼쳐져 있는 그림 말이지요.
박솔 박사의 괴파는 2%를 설명합니다. 비행대대 19의 항법 착오는 또 다른 한 줄을 채우고, 콜럼버스의 나침반 이상은 자기편각이라는 별도 답지를 갖고 있어요. 어느 하나가 500년을 통째로 풀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이제 '바다 괴담'이라기보다 '미해결 해양학 문제 모음집'에 가까워졌습니다. 30미터 파도는 이미 수조에서 확인된 만큼 일어날 수 있고, 그 한 방이 약 165미터짜리 배를 2분 만에 접을 수 있다는 것도 영상으로 남았어요. 다만 그 한 방이 버뮤다에만 떨어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수조 영상의 마지막 컷에서 두 동강 난 모형이 천천히 가라앉던 모습이 한참 잔상으로 남았어요. 1918년 3월의 사이클롭스 306명이 마지막으로 본 풍경도 그것과 닮았을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이었을지. 그 답만큼은 수천 미터 아래 어딘가에 그대로 잠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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