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미스터리/미해결 사건

양복의 라벨이 모두 도려내진 남자 — 타맘 슈드 사건의 74년

수상한작가 2026. 5. 30. 07:00

 

이름은 찾았는데, 정작 그가 왜 그 해변에 누워 있었는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74년 만에 신원이 풀린 그 남자 이야기예요.

 

1948년 12월 1일, 서머턴 해변에서 발견된 남자

호주 남쪽 애들레이드 인근, 서머턴 파크 해변이에요. 새벽 산책을 하던 부부가 모래사장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는 한 남성을 발견합니다. 멀끔한 양복 차림에 가죽 구두까지 갖춰 신었는데, 호흡이 없었어요.

 

추정 나이 40대 초중반, 키 180cm. 체격은 단단했고 옷차림은 깔끔했지만, 정작 신원을 알릴 만한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양복 안감의 상표, 셔츠 라벨, 호주머니 속 어떤 카드 한 장도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도려낸 흔적이 또렷했다고 해요.

 

부검대 위에 올려진 그의 위장에서는 소화되다 만 파이 한 조각이 나왔어요. 부검의는 미확인 독극물을 의심했지만, 끝까지 어떤 성분도 검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인 불명, 이름 불명. 호주 경찰은 그를 '서머턴 맨(Somerton Man)'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타맘 슈드' — 비밀 주머니에서 나온 페르시아어 쪽지

사건 발생 약 반년 뒤, 그러니까 1949년 6월의 재검사 과정에서 양복 안쪽 깊은 비밀 주머니 하나가 발견됩니다. 그 안에서 둥글게 말린 종잇조각 한 장이 나왔어요. 인쇄된 글자는 페르시아어로 "Tamám Shud" — 우리말로 옮기면 "끝났다"라는 뜻이에요.

 

이 두 단어는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1048~1131)의 시집 『루바이야트』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 있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책의 끝장을 찢어 그의 주머니에 넣어둔 것이지요.

 

그리고 7개월 뒤, 한 시민이 자기 차 뒷자리에 낯선 책 한 권이 놓여 있는 걸 발견하고 경찰서로 들고 옵니다. 바로 그 『루바이야트』였어요. 책 뒷장에는 알파벳 다섯 줄(한 줄은 줄로 그어 지워짐)로 된 암호와, 흐릿한 압흔으로 남은 전화번호 하나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데스마스크 앞에서 무너진 간호사 제시카 톰슨

전화번호의 주인은 해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살던 간호사, 제시카 톰슨이었습니다. 경찰이 찾아가자 그녀는 서머턴 맨을 모른다고만 말했다고 해요.

 

그런데 1949년에 제작된 그의 데스마스크(시신의 얼굴을 석고로 본뜬 것)를 직접 마주했을 때, 톰슨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만큼 동요했다고 합니다. 입을 다물고,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20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요.

 

이때부터 온갖 가설이 붙기 시작합니다. 냉전기였던 탓에 소련 첩보원설이 나왔고, 톰슨의 아들이 서머턴 맨과 신체 특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숨겨진 연인설'도 돌았어요. 다섯 줄짜리 암호는 미국 NSA마저 손을 든 채 풀리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최근에는 2014년 애들레이드 대학 데릭 애벗 교수팀이 제안한, 어떤 시 구절의 머리글자를 따서 외우는 기억술(mnemonic) 가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어요.

 

 

머리카락 한 올로 거슬러 올라간 74년의 DNA 추적

오랜 시간 단서는 거기서 멈춰 있었습니다. 그러다 2021년, 호주 당국이 서머턴 맨의 시신을 발굴하기로 결정해요. 무덤을 다시 연 셈이지요.

 

그런데 결정적인 단서는 정작 무덤 속이 아니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1949년산 데스마스크 안에 있었습니다. 석고를 굳히는 과정에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이 함께 묻혀 있었어요. 어른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안 되는 머리카락 한 가닥. 그게 70년 넘게 버텨 DNA를 남겼어요.

 

애들레이드 대학의 데릭 애벗 교수와 유전 계보학자 콜린 피츠패트릭이 이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DNA로 거대한 가계도를 그려 나갑니다. 4촌 이내 친척을 역추적하는 방식이었지요. 마치 거꾸로 푸는 족보 퍼즐 같은 작업이었다고 해요.

 

2022년 7월, 그렇게 좁혀진 이름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칼 '찰스' 웹(Carl 'Charles' Webb). 1905년 멜버른에서 태어난 전기·악기 기술자였어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애벗 교수 연구팀의 발표 기준이고,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경찰(SA Police) 의 공식 확인은 2026년 5월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연구팀이 제시한 DNA 일치율은 매우 높지만, 기관 차원의 신원 확정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어요.

 

 

이름은 찾았지만, 남은 의문들

여기서 이야기는 끝난 것 같지만, 정작 가장 큰 의문들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멜버른에 살던 그가 왜 800km 떨어진 애들레이드 해변까지 왔는지, 사인은 무엇이었는지, 간호사 제시카 톰슨과는 정말 어떤 사이였는지요.

 

특히 톰슨의 아들이 친자일지도 모른다는 오랜 가설은, 양쪽 가계의 DNA 비교 결과 혈연이 확인되지 않으면서 깨끗하게 기각됐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알았던 건지, 알았다면 무슨 사연이었는지는 여전히 빈칸이에요.

 

 

자료를 정리하다가 마지막에 한 장면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양복 안쪽 비밀 주머니에 곱게 말려 있던 그 두 단어, "Tamám Shud — 끝났다". 누가 그 종이를 찢어 그의 주머니에 넣었는지, 아니면 그가 직접 넣었는지조차 아직 모릅니다.

 

이름은 74년 만에 돌아왔지만, 그가 직접 지우려 했던 흔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지요. 라벨이 모두 도려내진 양복, 비밀 주머니의 두 단어, 끝내 침묵으로 남은 간호사 — 풀린 건 이름 하나뿐, 나머지 세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Somerton Man' 항목 / CNN 2022.07.26 보도 / Smithsonian Magazine / UPI / Cipher Mysteries / Discovery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