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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akaʻi Pō, 횃불 든 하와이 전사 영혼의 밤 행진

수상한작가 2026. 6. 4. 07:00

 

자료를 정리하다 1866년 하와이 신문 연재 하나에서 손이 멈췄어요. '그날 밤, 소라고둥 소리가 들리면 절대 쳐다보지 말고 엎드려라'— 역사가 카마카우가 남긴 한 줄을 의역한 대목이었거든요.

 

오아후의 누우아누 팔리(Nuʻuanu Pali) 절벽길, 한밤중. 멀리서 소라고둥 소리가 들리고, 일렬로 늘어선 횃불이 산비탈을 따라 천천히 다가옵니다. 발은 땅에 닿지 않고, 공기 중엔 옅은 황 냄새가 섞인 듯도 합니다. 이 행렬이 바로 하와이 밤의 행진자(Huakaʻi Pō) 입니다.

 

하와이 밤의 행진자, Huakaʻi Pō는 누구일까

Huakaʻi Pō는 우리말로 풀면 '밤의 행진'이에요. 영어권에서는 Night Marchers, 하와이어로는 ʻOiʻo, '영혼의 대열'이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유령이 아닙니다. 고대 하와이의 전사(koa)와 추장(aliʻi), 그러니까 살아생전 카푸(kapu, 신성 금기) 한가운데에 있던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전해져요. 생전에 추장이 길을 지날 때 평민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야 했습니다. 그 의례가 죽어서도 이어진다는 발상이라고 합니다. 추장이 행차하면 호위 전사들이 횃불(kukui)과 창, 곤봉을 들고 앞뒤를 지키고, 소라고둥(pū)과 북소리가 그 길을 알린다고 합니다.

 

지금 시점으로 옮겨보면 조선 시대 어가 행렬이 신성한 4일에 한 번씩 야간에 그대로 재현되는 셈이에요. 다만 행렬 구성원이 전부 영혼이라는 점만 빼고요.

 

 

신성한 4일 밤과 누우아누 팔리의 옛 전투지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행렬이 아무 날에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와이 음력 한 달 30일 중, 신성한 4일 밤에 집중된다고 해요. Pō Kāne(카네 신의 밤), Pō Kū, Pō Lono, Pō Kanaloa — 하와이 4대 신의 이름이 붙은 밤들입니다. 그중에서도 27일째인 Pō Kāne 밤에 가장 많이 목격된다고 전해집니다.

 

장소도 정해져 있어요. 옛 전투지, 신전(heiau), 왕묘, 고대 산길 같은 의례적인 자리입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오아후섬의 누우아누 팔리예요. 1795년, 카메하메하 1세가 오아후 정복 전쟁에서 수백 명의 오아후 전사들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 자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절벽 아래로 안개가 깔리는 밤이면, 그 위로 횃불 한 줄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는 증언이 한두 건이 아니라고 해요. 마우이섬의 라페루즈만, 빅아일랜드의 옛 해안 산길, 그리고 오아후 H-3 고속도로 일대도 자주 거론됩니다. 특히 H-3은 1980~90년대 건설 도중 의문의 사고가 잇따라, 결국 하와이 사제(kahuna)를 모셔 의례를 치른 뒤에야 공사가 마무리되었다는 민간 이야기까지 남아 있습니다.

 

 

1866년 카마카우의 기록과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가장 오래된 1차 기록은 하와이 역사가 사무엘 카마카우(Samuel Kamakau)가 1866년부터 71년까지 하와이어 신문 Ke Au ʻOkoʻa에 연재한 글입니다. 폴리네시아 신화 행진을 본격적으로 활자에 옮긴 거의 첫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카마카우가 남긴 생존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첫째, 절대 쳐다보지 말 것. 행렬의 눈과 마주치면 그날로 끝이라고 전해집니다.

 

둘째, 옷을 벗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릴 것. 살아생전 평민이 추장 앞에서 했던 그 자세 그대로요. 미동 없이 숨죽이면 행렬은 그대로 지나간다고 합니다.

 

셋째, 행렬 가운데 자신의 조상이 있어 "Naʻu!"라고 외쳐주면 안전. '내 사람이다·내 것이다' 정도의 뜻이에요. 직계 조상이 후손을 알아보고 다른 영혼들로부터 막아준다는 발상이지요.

 

집을 지키는 풍습도 따로 있어요. 마당에 티(kī) 잎을 심으면 행렬이 우회한다는 민간 보호 풍습입니다. 지금도 하와이 현지 주택의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늘어진 잎의 식물이 보인다면, 그 가운데 상당수가 이 티 잎이라고 해요.

 

2026년 빅아일랜드 우림 영상이 다시 떠오른 이유

이 이야기가 최근 다시 화제가 됐어요. 2019년 빅아일랜드 우림에서 촬영된 짧은 영상 하나가 2026년 들어 틱톡에서 다시 돌기 시작했습니다.

 

영상은 어둠 속에서 일렬로 늘어선 작은 빛들이 산허리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장면이에요. 누군가 이 영상의 촬영 날짜를 하와이 음력으로 환산해보니, 그날이 바로 Pō Kāne 밤과 겹친다는 주장이 붙으면서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물리적 해석도 같이 따라옵니다. 화산 가스가 산소와 만나 발광하는 현상, 야간 등산객들의 헤드램프 행렬, 장노출 합성 사진. 이 셋 중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의견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현지에서는 이걸 단순한 도시전설로만 다루지 않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부동산 개발이나 도로 공사 단계에서 카후나의 자문을 구하는 절차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Huakaʻi Pō는 그들에게 옛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적·종교적 현실에 가깝다는 뜻이지요.

 

 

영혼이 정말로 행진하는 건지, 화산 가스와 헤드램프의 합인지. 누우아누 팔리의 안개 너머 횃불을 보았다는 증언과, 1866년 카마카우의 신문 연재 사이에서 답을 고르는 일은, 결국 그 밤하늘을 마주한 사람의 몫으로 남습니다.